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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NO MORE WAR

타나아미 케이이치는 1936년에 도쿄 교바시의 옷감 도매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은 타나아미의 뇌리에 죽음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켰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린 시절에는 헐리우드 영화, 미국 만화책 등 일본에 유입된 미국 문화와 소년만화에 푹 빠졌고, 자신도 고교시절부터 그림의 재능을 꽃피웠다. 무사시노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한 후에는 현재도 계속 교류하는 시노하라 우시오(1932-)와 미키 토미오, 아카세가와 겐페이 등 ‘반예술’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행동했다. 1957년에 제7회 일본선전미술회전에서 포스터가 특선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대학 재학시부터 이미 디자이너로 일했다. 졸업후에는 하쿠호도 제작부에 소속되었지만, 사외 업무가 증가해서 약 2년 후에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다.

타나아미는 앤디 워홀의 장르 횡단적인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아 복제를 통해 확산되는 인쇄물이라는 작품 형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5년에 팝아트를 강하게 의식한 실크 스크린 작품 ‘ORDER MADE!!’(cat. 1-55)를 츠바키근대회랑에서 발표했다. 1966년에는 아티스트북 『타나아미 케이이치의 초상』을 간행해 인쇄물이란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수많은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생각을 자신의 활동을 통해 제시했다. 1968년에는 긴자에 오픈한 사이키델릭 디스코 ‘KILLER JOE’S’에 아트디렉터로 참여했으며, 대항문화를 다루는 미국의 『AVANT GARDE』지가 실시한 반전 포스터 공모기획에 《NO MORE WAR》가 입선되는 등 꾸준히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갔다. 타나아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잡지 장정과 설치미술도 제작함과 동시에, 미술 문맥과 통하는 자신의 작품도 제작했는데, 이같은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자신을 ‘이미지 디렉터’라 칭하게 되었다. 아트와 디자인 영역을 종횡무진하게 오가는 모습은 현재의 멀티 아티스트상의 선구자이며, 당초부터 타나아미는 과거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존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