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피카소의 기쁨
2020년 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타나아미의 일정은 다 백지화되었다. 예전과 달리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타나아미는 어느 날 아틀리에 구석에 방치해 두었던 자신의 그림을 눈여겨보았다(cat. 9-1). 1993년에 테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위해 제작한 작품으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엄마가 떠받치는 모습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1943년, 예일대학미술관 소장)에서 구도를 차용한 것이었다. 이 우연한 일을 계기로 피카소의 모사를 시작한 타나아미는 목적도 마감일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형태와 색상을 베끼는 단순한 행위에서 예기치 못 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고, 금세 푹 빠졌다고 한다. 사경처럼 마음을 비우고 연달아 모사하며, 피카소 그림의 제작과정을 수없이 간접 체험하는 가운데, 타나아미는 피카소의 독자적인 붓놀림과 조색 방식을 참으로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모티프와 색채감각으로 자유롭게 결부지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피카소 모자상의 기쁨’ 시리즈(cat. 9-2)는 현재도 다양한 사이즈로 계속 제작되며, 700점 이상에나 이른다.
초인적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긴 생애에 걸쳐 동서고금의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지를 뜻대로 차용하며 새로운 표현으로 계속 승화시켰다. 피카소의 이러한 희귀한 자질은 타나아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하다. 콜라보레이션은 대등한 힘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성립된다. 피카소의 가장 큰 이해자인 타나아미의 화필을 통해 두 수재의 강인한 창의력이 시공을 초월해 호응하고 대항하며 공명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