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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초고온: 일본에서의 출발, 1986년 12월부터 1991년 2월

일본에 온 후 첫 4년간은 제 인생 전체중 가장 힘들고 알찬 나날이었습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인간성, 인간 속에 존재하는 우주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고찰과 창조를 시작했습니다. 물질과 시공의 한계를 넘어 인간과 우주의 영원한 연결성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제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득한 옛날 태고의 힘을 빌리는 것’,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람, 작품, 자연의 일체화’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의거하는 우주론으로 서서히 이행했습니다. 또, 화약의 본질은 인류가 진화 초기부터 내재했던 에너지와 정신처럼 원초적 우주의 본질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작품을 만들자, 화약 폭발은 단순한 수단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보이는 세계에서 고생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깊이 사로잡혔습니다. 우주와 지구외 생명체에 관해 넓은 시야를 갖고 적극적으로 고찰하며, 현대 아트는 동양과 서양의 이원론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안문 사건이나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인류가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또, 아이의 탄생을 계기로 스스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우주를 탐구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이 ‘원초 화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6(cat.9)
《화약화 No. 8-10》
1988년
화약, 아크릴, 제지 펄프, 캔버스
약 228×183cm

방송 프로 촬영을 위해 NHK에 대형 캔버스 구입을 요청하고, 평론가 타카미 아키히코 씨의 도움을 받으며, 마루타마야 오가츠 연화점 회사에 연락해 제작에 필요한 화약과 전시장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사람과 자연, 우주 사이에 있는 ‘기’를 용같은 아우라로 표현했습니다.

#7 (cat. 6)
《화약화 No. 8-27》
1987년
화약, 종이
27×24cm

#8 (cat. 7)
《화약화 No. 8-25》
1987년
화약, 종이
27×24cm

일본에 건너온 당초에는 아파트 부엌에서 어린이용 불꽃에서 끄집어낸 화약을 써서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이 두 작품에는 사인할 때 자주 사용되는 ‘서화판’을 사용했습니다. 한 번에 다 타 버리는 중국의 권련용지와 비교해 서화판은 폭발에도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9(cat. 10)
《공간 No. 1》
1988년
화약, 종이
각각 약 162×88cm

《공간 No. 1》은 제 초기 설치미술 작품으로, 거울을 이용해 공간을 확장시킨 것입니다. 공간에 해당되는 영어 ‘space’는 우주를 뜻하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일본에서 종종 값싼 커튼에 사용되는 합성섬유 소재를 실수로 쓰고 말았습니다. 폭발로 인해 소재에 큰 손상을 입혔지만, 폭발 흔적은 에너지를 띠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오리지널 작품중 커튼만 전시하고, 거울은 전시하지 않습니다.)

#10(cat. 8)
스케치북(1987〜1995년, 일본)
1987〜1995년
링제본 스케치북 11권
각각 약 32×26cm

완성된 작품은 제 창작적 성장의 성과인 경우가 많은데, 그 이면에는 오랜 기간 축적한 몇 권의 스케치북이 있습니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약 14권의 스케치북이 쌓였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어떻게 역경, 풍수, 기공, 도교 등의 옛 우주관을 지니고 고향을 떠났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동양문화가 남긴 것들을 깊이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와 현대미술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특히 서점에서 우주론의 발전에 관한 수많은 아름다운 책들을 공짜로 읽을 수 있었던 점에 감격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고 다양한 것들이 융합되는 모습은 어렸을 적부터 품은 우주와 별하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오래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 예술적 실천과 방법론에 큰 비약을 가져왔고, 그 ‘싹’이 지금 이 새로운 전시회 작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11(cat. 14)
《승룡》을 위한 드로잉
1990년
화약, 목탄, 먹, 종이
66.5×72cm

1990년, 남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서 개최된 ‘어제를 위한 내일의 중국’전에 참가했는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떠난 저의 첫 여정이었습니다. 이 화약 드로잉은 제가 구상한 폭발 이벤트 《승룡》(미개최)을 그린 것입니다. 해질녘에 화약과 도화선이 발화되고, 생트 빅투아르 산기슭에서 산꼭대기까지 올라 승천하는 드래곤을 그렸습니다. 이 《승룡》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저와 세잔느, 서양 미술사와의 소통과 연관된 첫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12
《인류가 자신들의 행성에 만든 운석 충돌구 No. 1:생트 빅투아르 산을 멀리서 바라보며 세잔느에게 바치는 폭파》
1990년
화약, 먹, 종이
63.5×94cm

#13
《운석 충돌구》
1990년
화약, 혼응지
약56×67×2.5cm

이 두 작품은 폭발 이벤트 《인류가 45.5억년 지난 자신들의 행성에 만든 45개 반의 운석 충돌구: 외계인을 위한 프로젝트 No.3》과 관련된 것입니다. 저는 남프랑스의 어떤 마을에서 팀을 구성해 충돌구 지형을 파내고 그 구멍을 헌 신문지로 만든 펄프로 메꿨습니다. 공업화 이전의 수작업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완료하는데 약 한 달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충돌구 안에 화약을 투입하고 도화선으로 연결한 후 해가 지자 점화했습니다. 월하미인이라는 꽃처럼 허무한 3초 사이에 마치 천둥 번개로 인해 지구가 쪼개지는 것같은 광경이 펼쳐졌고, 불길과 연기 한 가운데서 저는 지구의 종말의 시공 속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감상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세월 동안 존재했던 지구가 순식간에 무로 돌아가는 찰나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별과 행성은 폭발로 인해 생성되고 마침내 소멸된다는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 지구의 운명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구를 위해 노력하는 의의는 무엇일까요? 유일하게 단언할 수 있는 진실은 죽음을 앎으로써 생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마찬가지로 죽음을 향하고 있는 지구의 필연적 운명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이 지구를 더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P3 큐레이터 타카기시 미치코 씨와 프로듀서 이토 시노부 씨가 이 거대한 폭발을 목격한 것은 이듬해 P3 개인전 ‘원초 화구’로 이어졌습니다.

#14(cat. 15)
《태동:외계인을 위한 프로젝트 No. 5》
1990년
화약, 먹, 종이
76×57cm

이 화약 드로잉에 묘사된 폭발은 세토 나이카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불도저로 땅을 골라 직사각형 ‘캔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골을 파서 화약 꾸러미를 연결하는 도화선을 늘어놓았습니다. 점화를 하자, 땅울림과 동시에 불길이 지면에서 솟구쳐 마치 새로운 농작물들이 줄지어 싹튼 것 같았습니다. 지진계는 폭발 전, 폭발하는 순간, 폭발 후의 지구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지구의 공진을 기록해 사람들은 지구가 탄생하기 전의 태동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주로 우주에서 본 시점과 인간과 우주의 소통이라는 두 가지 컨셉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빅뱅 이후 이어지는 우주의 움직임 속에서 제 작품 안의 폭발 순간을 통합시키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15(cat. 11)
《인류의 집:외계인을 위한 프로젝트 No. 1》
1989년
화약, 종이
약 213×154cm

이 드로잉은 1989년에 타마가와 강 하천 부지에서 실시한 폭발 이벤트를 그린 것입니다. 이는 제가 처음으로 시행한 야외 폭발 이벤트이기도 했습니다. 강변에 텐트를 쳤는데, 이는 유목민의 집의 상징이자, 인류가 서식하는 것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화약으로 텐트를 폭발시켜 전쟁 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을 암시했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의 감상자로 지구외 생명체를 가정했습니다. 이 폭발을 통해 인류가 화약으로 우주에 발신하는 것은 더 이상 전쟁이나 살육이 아닙니다.

#16
《나는 E.T.——천신을 만나기 위한 프로젝트:외계인을 위한 프로젝트 No. 4》
1990년
화약, 먹, 종이, 캔버스
227.4×182cm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소장

1990년 10월, 저는 후쿠오카에 있는 조선소 철거지에 화약과 도화선을 써서 대형 미스테리 서클을 만들었습니다. 이 지구외 생명체의 심볼에 점화해 인류와 다른 우주 생명체가 한 순간이나마 ‘일체화’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준비하는 와중에 후쿠오카의 다른 장소의 논에서 불가사의한 미스테리 서클이 갑자기 출현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제 프로젝트에 호응한 우주의 반응일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