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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인간 아래 – 유혹의 시대

고대 신화의 사랑 이야기는 계속 서양회화의 보편적 주제였던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 프랑스에서는 18세기에 접어들자, 현실세계에 사는 인간들의 연애상 묘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네덜란드 풍속화에서는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다채로운 남녀간의 인간미 넘치는 애정 행각들이 그려졌습니다. 술집에서 얼굴을 맞대는 서민 남녀, 사랑의 매매를 흥정하는 젊은이와 뚜쟁이, 깔끔한 실내에서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상류 시민 연인들….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러한 장면을 마치 현실의 한 순간을 잘라낸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상징적 몸짓과 모티프를 구사해 성애의 우의성을 교묘하고 은은하게 담았습니다. 얼핏 사랑과는 관련없어 보이는 호흐스트라텐의 《실내화》(no. 51)는 이러한 암시적 표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편,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바토가 창시한 페트 갈랑뜨(화려한 향연) 회화가 유행해 자연 속에서 상류계급 남녀가 대화나 춤을 즐기며 유혹의 밀당을 벌이는 장면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세기 후반에는 부셰의 《갈색 머리의 오달리스크》(no. 62)처럼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한 회화가 주로 지적 엘리트층의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대 에로티시즘의 아이콘적 존재인 프라고나르의 《빗장》(no. 59)에서는 쾌락이나 폭력과도 일맥상통하는 성애라는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편, 18세기 후반에는 계몽사상의 발전과 부르주아 계급의 핵가족화 영향을 받아 결혼과 가족에 대한 사고방식이 변화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부부간의 애정이나 아이에 대한 배려같은 감정의 끈끈한 정이 존중받게 되었고, 화가들도 부부나 가족간의 이상적 관계를 드러내는 초상화나 결혼을 주제로 삼은 회화를 제작했습니다.